제 749 호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조각, 론 뮤익展
극도로 사실적인 현대미술 조각으로 유명한 호주 출신 론 뮤익(Ron Meuck)의 대규모 개인전이 지난 4월 11일 삼청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6,7 전시장에서 열렸다. 한국 최초의 전시이며, 최근 SNS상에서 인증샷과 함께 핫한 전시로 입소문을 탄 론 뮤익의 전시관에는 공연장을 방불케하는 긴 대기줄이 생겼다. 사람들은 왜 이 거대한 인물 조각 앞에서 멈춰 서고, 왜 그토록 긴 시간을 들여서 이 전시를 보려 하는 걸까? 그 인기는 단순히 ‘조형적 완성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론 뮤익의 전시가 만들어낸 압도적 체험과 그 이면의 매력을 들여다보자.
‘론 뮤익’, 그는 누구인가
▲5전시장 앞에 형성된 대기줄 (사진: 변의정 기자)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뮤익의 현존하는 작품의 96%인 48점이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전체 작품수가 총 50점으로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명성에 비해 적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런 것이 론 뮤익은 원래 쇼윈도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어린이 영화나 인형극과 같은 TV 프로그램용 모형을 제작하는 분야로 진출했다. 그리고 1996년, 그가 40대 된 후에야 유명한 화가이자 그의 장모인 파울라 레구에게 그룹 전시회에 전시할 피노키오 모형의 제작의뢰를 받으면서 미술계에 진출했다.
모형제작자로서의 제작능력 덕분이었는지, 광고 디자이너로서의 감각 덕분이었는지 뮤익의 초기작 <죽은 아버지>(Dead Dad)는 1997년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이하 YBA)’의 ‘센세이션 전시회’에 전시되며 직관적인 제목과 극사실적인 작품으로 대중의 주목을 한눈에 받게 된다. 작품은 그의 죽은 아버지를 실제 크기의 절반으로 줄이고 얇고 섬세한 핏줄과 인모까지 극도로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실제 시신을 보는 듯한 충격을 줬다. 그리고 1997년부터 현재까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극사실적 조각이라는 주제와 형식으로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마스크 Ⅱ> (사진: 변의정 기자)
뮤익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여타의 다른 현대미술가들과는 달리 ‘전통적’이다. 이때 전통적이라는 뜻은 작가의 손을 직접 거쳐 주물되는 현대미술 이전의 조각제작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명한 현대미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바나나와 제프 쿤스의 풍선개는 작가의 설계에 따라 작가는 제작 주문을 넣을 뿐 직접 대상을 조각하진 않는다.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매우 독특한 제작방식이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적어도 1년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장인정신을 요한다.
확대하고 축소한 신체
▲<침대에서> (사진: 변의정 기자)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처음에는 작품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작품이 사람과 지나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실제 사람이고 어떤 것이 작품인지 헷갈릴정도로 형상이 정교했다. 전시장 내부는 작품 하나하나를 중심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었으며, 각 조각은 조명을 통해 극적으로 부각되어 있었다. <침대에서>는 6m에 달하는 길이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관객이 배제된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반대로 <배에 탄 남자>는 앉은 자세의 인물이긴 하지만 실제 사람보다 훨씬 작게 제작되어 작품과 눈높이를 맞춰야만 디테일을 읽을 수 있었다.
▲<배에 탄 남자>(사진: 변의정 기자)
작품마다 크기와 시점이 달라 관객은 계속해서 자신의 시선과 신체를 조정하게 되었고, 이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작품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확대와 축소’의 장치는 단순한 스케일 효과를 넘어서, 관객의 신체와 인식 사이에 새로운 거리를 생성해내며 뮤익 특유의 침묵 속 밀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진짜는 어디에 있는가
▲관객 참여형 콘텐츠 ‘인생극장’ (사진: 변의정 기자)
실제로 뮤익의 작품을 보면 ‘이건 진짜 사람 같은데?’라며 감탄하게 된다. 이는 ‘진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진짜 사람’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장치다. 작품의 대상들은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정성들여 만들어진 뮤익의 인간군상은 삶의 일상적인 무게감이 있다. 전체적으로 전시설명이 간단하고 전시 끝에 위치한 영상도 인터뷰보다는 작품의 제작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일까,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출구 안쪽에는 관객 참여형 콘텐츠인 ‘인생극장’ 코너가 있었다. 이 공간은 선정된 문학작품을 통해 전시와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을 언어화하여 카드에 글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전시를 통해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그게 진짜인지 사색하고 고뇌하는 행동이 ‘진짜 나’를 만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ai를 이용하면 클릭 한번에 수많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오늘날에, 뮤익의 조각은 오히려 과도하게 사실적이고 오래걸리는 형상을 만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과장된 정성과 비효율 속에서 ‘진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한 것처럼 느낀다. 이토록 사실적인 조각이 ‘가짜’라면 ‘진짜’는 과연 무엇일까? 그 대답은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변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