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9 호 [교수칼럼]“Diamonds and Rust”, 어느 디바의 회상
최근 밥 딜런의 데뷔 시절 이야기를 다룬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을 보았다. 영화는 혁신의 대명사 스티브 잡스가 추앙한 영웅이기도 했던 밥 딜런을 포크송 음악계의 혁신가로 묘사했다. 그 이미지가 아주 강하여 그의 다른 면면들은 흐릿하게 보이기도 했다.
대중음악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2016년에 일어난 매우 기념비적인 사건이라서, 대중문화와 관련된 교양수업을 하면서 반전과 인권운동에 참여했던 그의 노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자료를 만들면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조안 바에즈와 그와의 관계였다.
7·80년대 우리나라에서 저항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조안 바에즈에 관한 소식은 그 이후론 별로 접하지 못했다. 세월을 점프해 마주한 그녀의 영상엔 노년의 디바가 “Diamonds and Rust” 노래 가사를 개사해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원래 1975년에 발표한 이 노래의 가사는 그녀가 밥 딜런과 이별한 후 10년이 지나서 그들의 사랑을 회상하며, 다이아몬드 같은 이름다운 추억과 동시에 녹슨 것과 같은 아픈 상처를 전하는 내용이다. 그녀는 개사한 가사를 통해 이별 이후 사랑의 쓰린 추억인 ‘다이아몬드와 녹’을 이제는 거기서 ‘다이아몬드만 갖겠어’라며 유쾌한 조크로 마무리한다.
이 노래는 실제로 그녀와 밥 딜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60년대 초, 조안 바에즈는 자신의 투어에서 무명의 밥 딜런을 배려해 그를 무대에 세웠고, 그 덕분에 딜런은 노래할 기회를 얻었다. 그 이후 함께 공연도 하고 사랑도 하며 서로 정신적 교류도 나누었지만, 어느 순간 딜런은 자기만의 음악을 고집하며 그녀가 추구했던 저항의 음악 세계를 벗어나고 그녀와의 사랑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잠수타고 떠난 그는 다른 여인과 만나 젊은 방랑자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이어가던 어느 때인가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로 들려왔다. 조안은 잊었던 그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노랫말을 만든다. "10년 전 나는 너에게 커프스를 선물했지." 여자가 남자에게 커프스를 선사했다는 의미는 명예를 안겨주었다는 메타포라고 한다.
어느덧 80대가 된 조안은 최근 영상에서 ‘10년 전’을 ‘60년 전’으로 개사한다. 이미 예전에 ‘30년 전’으로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이제 다이아몬드만 갖겠다며 짓궂게 관객들에게 농을 건넸다. 지난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놓아주고 그를 놓아주는 이와 같은 농담에 담긴 관대함은 세월의 공덕일까. 세상살이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관계 맺기에 얽힌 여러 인과가 아닐까 싶다. 살다 보면 믿었던 사랑이, 믿었던 핏줄이, 믿었던 이가 내게 감당하지 못할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옛 어른들은 전생에 지은 죄를 갚는다는 말로 위안 삼기도 하지만, 그런 비과학적 비이성적 논리로 위로가 될까. 의문이 해소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말 안에는 궁극적으로 어떻든 간에 용서하고 품으라는 의미가 내재해 있는 듯하다. 흔히들 하는 말, 별 뜻 없이 공중에 떠도는 말에 어쩌면 인생살이를 통해 체득한 심오한 깊은 지혜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너를 더 이상 다치게 하지 말란 역설이지 않을까.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네 뼈를 녹이듯 너를 갉아먹으니 그만 놓아버리라는 뜻이 아닐까. 내 아픔과 고통의 예술적 터치가 용서와 놓아버림이요, 내 어둠과 절망의 예술적 승화가 내 안에 빛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조안 바에즈는 자신이 개사한 노래를 통해 예술의 힘을, 그리고 위로를 전한다. “당신이 다이아몬드예요” 관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김은경 교수(글로벌경영학과)